“따지지 말고 아무거나 지적사항 한두 개 넣어 보고서를 수정하라. 위에서 바꿔달라고 하면 바꿔줘야 한다.”
올해 진행됐던 2019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참여한 평가위원 A씨는 지난 5월 중순 평가단 간부로부터 이같은 지시를 들었다. A씨는 자신이 평가를 맡았던 기관에 대한 세부평가를 끝내 보고서를 올렸는데, 점수를 낮추고 이에 맞춰 보고서를 사후에 수정하라는 얘기였다.
특별한 지적사항이 없다고 했지만 “알긴 아는데 몇줄 바꾸고 지적사항 아무거나 넣어서 보고서를 만들라”는 말만 돌아왔다고 A씨는 주장했다.
경영평가단 내부지침에 따르면 평가단장, 간사, 팀장 등 평가단 간부들은 평가위원들에게 보고서 수정 의견을 낼 수 있다. 다만 평가점수의 일관성,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근거 없이 무작정 수정을 요구할 권한은 없다.
국민일보가 25일 입수한 내부지침에도 ‘기관 평가는 평가위원의 독립적 고유권한’으로 명시돼 있다. A씨는 “나는 정부 편람을 근거로 평가한 것”이라며 “윗선에서 개입해 등급을 마구잡이로 변경하는 것은 경영평가 제도 취지에 반한다”고 말했다.
A씨에게 평가점수 수정을 요구한 평가단 간부는 “평가단 윗선이 연임되려면 수정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며 “일단 올해는 연임시키는 방향으로 평가를 진행하고 내년에 공정하게 평가하는 쪽으로 일을 진행하자”는 취지로 말했다고 A씨는 전했다. 평가단 간부들은 연임이 가능하다. 기재부가 평가단을 구성하기 때문에 평가단 윗선은 기재부 요구를 반영하기 쉬운 구조라고 A씨는 주장했다.
A씨는 “몇 년 전 연임을 못했던 평가단 윗선이 있었는데 그를 두고 평가단 안팎에서는 ‘잘렸다’고 표현했다”며 “순응하는 사람은 연임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날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평가 위원을 지냈던 국립대 교수 B씨도 “평가단 윗선이 어디 눈치를 가장 보겠느냐”며 “이 윗선이 이래라 저래라 한다는 것은 개인 생각이라기보다 특정 부처의 의중”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경영평가는 상대평가로 이뤄진다. 특정기관의 등급을 보전하거나 올려주기 위해서는 다른 기관의 등급을 낮춰야 한다. 이와 관련해 평가단 안팎에서는 “기재부 출신이 기관장으로 있는 곳은 C(보통) 이하의 등급을 받지 않는다” 등의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A씨는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 특정 기관은 A(우수), 다른 기관은 D(미흡)로 정해졌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실제 그대로 됐다”고 주장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잡음이 있었던 것은 과거에도 있었다. 공개적으로 큰 반발이 있었던 사례는 2014년 남궁민 당시 한국산업기술시험원장이 경영평가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던 일이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은 2012~2013년 경영평가에서 연속 D(미흡) 등급을 받아 기관장 해임건의 대상이 됐다. 그는 당시 “76억원 흑자를 내는 등 경영상태도 좋았다. 평가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괘씸죄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당시 기재부는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고 반박했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A씨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국민일보에 “기재부는 평가 과정을 모니터링할 뿐 점수를 내는 데 의견을 내지 않는다”고 거듭 해명했다. 그러면서 “평가과정 기준을 마련할 때와 이의제기가 들어올 때 공공기관운영위가 의견을 내지만 기재부는 개입하지 않는다. 평정회의에도 참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영평가에 참여했던 다른 인사는 “기재부와 평가단이 마지막으로 최종 평정을 했으며 기재부가 평정회의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경영평가단 간부 D씨는 A씨 주장에 “평가가 마무리되기 직전 기재부로부터 새로운 평가자료를 받았다”며 “이 때문에 마지막에 기관 점수가 수정돼 평가위원들이 오해를 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경영평가단의 다른 간부 E씨도 “6월쯤 기재부로부터 평가자료를 받는데 그때 점수 변화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A씨는 이런 해명에 대해 “점수 수정 요구를 받았던 것은 5월 중순부터”라며 “6월 이후 평가단에 전달된 부처 평가 자료와는 관계가 없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재부가 매년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경영 노력과 성과를 평가하는 제도다. 기재부는 100명 안팎의 민간 평가위원을 선정해 S(탁월)부터 E(아주 미흡)까지 6등급으로 각 기관에 대한 종합 점수를 매긴다.
공공기관 직원들은 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지급받는다. D등급 이하 기관은 성과급을 아예 못 받을 수 있다. 기관장은 평가 결과에 따라 경고, 심하게는 해임 건의까지 받게 된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기관의 한 해 농사는 경영평가를 어떻게 받느냐로 결정된다. 전체 공공기관 운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이 경영평가 결과에 목을 매는 이유다. 올해에는 129개 공공기관이 평가 대상에 올랐다.
▶[단독] 경영평가위원 “‘부당한 것 알지만 바꿔라’ 지시 있었다”
문동성 박재현 기자 theMoon@kmib.co.kr
August 25, 2020 at 03:19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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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넣어서 수정하라”…경영평가, 답은 이미 정해졌었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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